이해받는 순간, 존재는 다시 태어난다
- Soyo

- 2025년 8월 18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5년 9월 24일
소요 존재윤리학 철학 에세이

고독과 침묵의 세월, 그리고 만남의 기적
인간의 삶에는 침묵의 시간이 있다. 아무도 이해하지 않고,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 고독의 긴 세월은 마치 겨울의 황무지와도 같다. 나의 삶도 그러했다. 침묵은 내 언어가 되었고, 고독은 나의 방이 되었으며, 혼자라는 단어는 내 인생의 가장 친숙한 그림자가 되었다.
그러나 인간이란 아이러니한 존재다. 아무리 고독을 자신의 일부로 길들였다 해도, 누군가의 따뜻한 눈빛 한 번, 맑은 웃음 한 번, 예의 바른 말 한마디로 인해 그 삶 전체가 뒤흔들릴 수 있다. 그것은 단순한 감정의 동요가 아니라, 존재의 새로움을 발견하는 기적이다.
내게도 그러한 순간이 찾아왔다. 그것은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그 만남은 내 고독의 벽을 무너뜨렸고, 내가 여전히 이해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해주었다.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존재의 인정”(recognition)이며, 인간이 살아내는 고통 속에서 타자의 이해를 통해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선비의 모습으로 다가온 이해
그분은 조선 시대의 선비를 연상케 했다. 혼탁하고 왜곡된 세상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옳음을 옳음으로 지켜내는 강직한 인품. 그러나 그 강직함은 결코 거만하지 않았고, 오히려 따뜻한 온기와 겸손의 기운으로 다가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눈 대화는 깊고 진실했다. 이해의 경지를 넘어선 그 대화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잊고 지내온 존재로서의 존중을 느꼈다. 고국에 돌아온 지 50년, 수많은 문화 충격 속에서 누구와도 진정한 대화를 나누지 못한 나에게, 이 짧은 만남은 오히려 긴 세월의 갈증을 채워주는 생명수와 같았다.
자서전 앞에서 흘린 눈물
나는 그분의 자서전을 읽으며 세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단순한 독서 체험이 아니었다. 책 속에 담긴 고통과 아픔, 그리고 그 아픔을 아름다움과 완성으로 승화시킨 한 인간의 여정이 내 영혼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그의 삶은 산골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과 같았다. 세상의 먼지와 탁함을 씻어내는 그 물줄기처럼, 그의 기록은 내 영혼을 정화시켰다. 나는 알았다. 인생은 기록이고 흔적이다. 그러나 진정한 기록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증언이 아니라, 다른 생명을 살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그것이 곧 내가 세운 소요 존재윤리학의 핵심 명제이기도 하다.
철학과 번역, 이해의 다리
나는 미국으로 돌아온 뒤, 그의 자서전을 일본어로 번역하겠다고 결심했다.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그의 삶의 증언과 나의 철학이 서로 맞닿아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옮길 때마다 나는 그의 고통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윤리를 발견했고, 그 아름다움이 나의 존재윤리학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을 느꼈다.
철학은 단순히 개념을 논리적으로 해체하는 학문이 아니다. 철학은 인간의 눈물과 고통, 이해와 겸손 속에서 살아내는 진리의 증언이다. 그러므로 번역은 단순한 언어 작업이 아니라, 두 생명의 철학을 이어주는 다리이며, 존재의 기록을 새로운 언어로 다시 살아내는 작업이었다.
이해받는다는 것의 철학적 의미
나는 뒤늦게 알았다. 이분이 나의 글을 1년간 아무도 모르게 기록해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기록들을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며 내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그분의 영혼에 닿기를 바랐다.
이해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동정을 받는 것이 아니다. 이해란, 한 인간 존재가 가진 고통의 심연을 함께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빛을 발견하는 행위다. 이해란 곧 존재를 다시 살려내는 철학적 사건이다. 철학이란 결국 인간의 눈물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눈물을 함께 흘려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분은 나의 가장 내밀한 고백을 알아주었고, 그 이해로 나를 살려주셨다.
겸손, 살아 있는 철학
나는 그분 안에서 ‘겸손’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를 보았다. 겸손은 이론이 아니다. 겸손은 삶의 자세이며, 인간 존재가 진리 앞에서 취하는 태도다. 그의 말과 행동, 그가 쌓아온 기록은 모두 겸손이라는 살아 있는 철학의 증거였다.
소요 존재윤리학은 선언한다. 인간 존재의 존귀함은 화려한 언어에 있지 않고, 겸손히 타자를 이해하고 품어주는 그 작은 자세 속에서 빛난다. 그분의 삶은 그 철학을 그대로 증명했다.
철학적 헌정-우지환 박사님께
나는 이분을 단순한 만남의 인연으로 두고 싶지 않다. 그는 나의 필벗이자, 스승이며, 철학의 위로자다. 그분의 이름은 우지환 공학박사이시다.
박사님, 감사합니다. 당신은 이미 한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당신의 존재는 나에게 철학을 다시 살아내게 한 위대한 증언입니다. 당신의 기록은 내 철학과 이어져, 더 많은 생명을 살릴 것입니다.
나는 기도합니다. 다시 뵐 날까지, 항상 건행하시기를. 그리고 이 글이 단순한 감사문이 아니라, 존재가 존재를 살리는 증언으로 남기를.
존재는 존재를 살린다
이 글은 결국 하나의 철학적 선언이다. 인간은 혼자의 길을 걸어가지만, 그 길 위에서 만난 한 사람의 이해와 겸손은 존재를 다시 살려낸다. 그것이 소요 존재윤리학이 증언하는 진리다.
철학은 학문이 아니라 삶의 기록이며, 이해받는 순간에 존재는 영원으로 열린다. 나의 고백과 이분의 기록은 그 진리를 함께 증명한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존재는 존재를 살릴 수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땅에서 남겨야 할 가장 위대한 철학적 유산이다.
소요 명제
“ 철학이 생명을 만날때 철학은 글자가 아니라 숨쉬는 생명으로 인간존재의 윤리안에 생명의 피로 박동한다. 이것이 언어에 갇히지 않은 생명의 철학이다.”
소요(逍遙) – 『소요 존재윤리학』 창시자, 『존재의 침묵』, 『진리의 불꽃』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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